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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가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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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로(京路)에 살던 한 심성(心性) 곱던 여인(女人)이 살던 자기 집을 팔아 죽어가던 사람을 살리고 이 세상에 태어나 거센 불길 속에서도 심뽀가 고약한 사람들과 맞서 마산을 지킨 아름다운 여인의 삼세인과(三世因果)를 기록한다
작성자 Baikaltai House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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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584



.***


수명복자(受命福者)인

정명님(鄭明姙)선생은 영광출신(靈光出身)이다.


선생(先生)은

천성적(天性的)으로 심성(心性)이

곱고 아름다운 여인(女人)이다.


옛 적 경로(京路)에 살 때에는

자비심(慈悲心)이 발동(發動)하여,


살던 자기 집을 팔아 아무 조건(條件) 없이

불쌍한 사람을 구(救)하여 살려 준

공덕(功德)으로 천상(天上)에 왕생(往生)했다가,


부친(父親) 정순도(鄭順燾) 선생과

인연(因緣)이 닿아 세상(世上)에 태어났다.


1976년도 방화(放火)가 전국(全國)을 휩쓸 때

전쟁터와 같던 마산(馬山) 험지(險地)에서

의지없이 홀로 버틴 대단한 성처녀(聖處女)였다.


정명님(鄭明姙)선생은

내가 진실(眞實)로 확신(確信)하건데,


자기가 자기 의지에 따라 자기 일신을 위하여

지은 죄(罪)는

먼지 한 점도 없는 곱고 착한 여인(女人)이다.


1976년 4월 17일 방화(放火)로

화염(火焰)이 치솟아 불 길이 한참일 때,


가면(假面)을 벗어던진 사람들이

벌떼처럼 달겨들어

고발(告發)한다 하는 등 불난 집에 부채질하며,


문에 섯다가 김아무거시가 들어서면

작두로 목을 자른다 하는 등 써늘한 악담을 하며

악랄하게 덤벼들며 죽이려 해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던지

이 일로 선생(先生)은

눈물을 훔치며

마산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기 싫다 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단돈 10원도 쓰지 않은

700만원이나 되는 공공단(公共壇)의 작지 않은 빚을,


당시에

700만원은 자그마한 집을

두 채는 살 수있는 큰 돈이였다.

합성동에 터미널이 들어서기 전

그곳 땅 한평이 2만원 정도 할 때의 일이다.


기름을 한 병 두병을 판

손톱에 피가 나는 아픈 돈으로,


이자(利子)까지 모두 다 갚아 준

가상(嘉祥)하고 너무나 큰 공덕(功德)이 있다.


그 공덕(功德)은 너무도 진실하여 

천지(天地)를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수명복자(受命福者) 정명님(鄭明姙)선생아!


그대가,


언젠가 대시(大時)가 닥쳐

영소보전(靈宵寶殿)에 가기 전(前),


동악청(東嶽廳)에 서게 되면

당당하고 떳떳하게

다음과 같이 판관(判官)에게 말하라.


나는

터럭 끝 만큼도 죄(罪)가 없다.


나에게 죄(罪)가 있다면,


그것은

공공단(公共壇)에 함께 있던,


건도주재(乾道駐在)

김아무거시 때문에 지은 죄(罪)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10원도 쓰지 않은 돈 700만원을

이자(利子)까지 모두 다 갚은 공덕(功德)이 있다.


그렇게

큰 소리로 외쳐 말하라.


그리하면 판관(判官)들도,


그대에게

례(禮)를 표(表)하고 놓아 보내며,


대라팔천(大羅八天)으로

그대를

공손(恭遜)하게 인도(引導)할 것이다.


그리고는,


그대는 삼계(三界) 밖의

자유(自由)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 언젠가

동악청(東嶽廳)의 문초(問招)가 있게 되면,


그대에게는

조금도 죄(罪)가 없음을 진술(陳述)할 것이다.


어느 면으로 보나

정명님(鄭明姙)선생은,


나에게 있어,


참으로 은애(恩愛)로운 사람이며

절대로 잊지못할 진실로 고마운 사람이다.


***


내 바로 옆에 서 있는 여인은,


박나찰(朴羅刹)과 불륜(不倫)을 저질러

육체관계(肉體關係)를 맺음으로 그 몸을 딛고

나찰(羅刹)이 밟고 다닐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 주었고,


1976년 4월 17일 방화(放火)에 휘발유를 끼얹져

박나찰(朴羅刹)이 마음 놓고 불길을 조종하도록,


악랄(惡辣)하게

모든 단초(端初)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불길이 사그러들지 않도록 불쏘시게로

수십년간의 자료를 박나찰(朴羅刹)에게 건네줌으로,


박나찰(朴羅刹)이

고혈(膏血)을 대접으로 들이키도록 하는데

절대적으로 큰 대단한 역할(役割)을 하였다.


그는 죽을 때까지 개고기를 먹으며

온 몸에 피를 묻히고 사는

당연한 응보(應報)지만 처량(凄凉)한 사람이 되었다.


박나찰(朴羅刹)은

고혈(膏血)을 고름을 짜듯 빨아다가

5만평(五萬坪)이나 되는 나찰궁(羅刹宮)을,


조감도(鳥瞰圖)까지

그려놓고

추진(推進)하다가 죽었다.


상기(上記)의 여인이 나에게 말하였다.


그는

틀림없이 지옥(地獄)에 갔다.


나를 발로 차 버리고

다른 여자를 꼬드겨 그 일을 하다가 죽었다.


라고

나에게 말하며 분개(憤慨)해 했다.


***

첨부파일 도서관+추가+67.jpg , IMG_2253.JPG , Scan_20180624_10355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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