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노군께서 말씀하는 항상 맑고 고요한 경
노군이 말하기를 큰 道는 형상이 없으나 하늘과 땅을 생육하며, 큰 道는 情이 없으나 해와 달을 운행하며, 큰 道는 이름이 없으나 萬物을 길러 양성하니 나는 그 이름을 알지 아니하여 강하게 말하기를 道라 이름 한다. 대저 道라는 것은 맑음이 있고 흐림이 있고, 움직임이 있고 고요함이 있다. 하늘은 맑고 땅은 흐리고, 하늘은 움직이고 땅은 고요하고, 남자는 맑고 여자는 흐리고, 남자는 움직이고 여자는 고요하다. 本을 내리고 末까지 흘러 萬物을 낳는다. 맑음은 흐림의 근원이 되고, 움직임은 고요함의 기초가 되니 사람이 능히 항상 맑고 고요하면 하늘과 땅이 다 다 돌아오리라. 대저 사람의 정신은 맑음을 좋아하지만 마음이 시끄럽고 사람의 마음은 고요함을 좋아하지만 욕구가 이끄니 항상 능히 그 욕구를 보내면 마음이 스스로 고요해지고 그 마음의 물이 맑아지면 정신도 스스로 맑아져서 자연히 6욕(빛, 소리, 향기, 맛, 감촉, 법)이 생겨나지 않고 3독(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소멸하리라. 써한바 능치 아니한 것은 마음의 물을 맑게 하지 못하고 욕구도 보내지 아니하였다. 능히 보낸 자는 안으로 그 마음을 보나 마음에 그 마음이 없고, 바깥으로 그 형상을 보나 형상에 그 형상이 없으며, 멀리 그 물건을 보나 물건에 그 물건이 없으니 3가지를 이미 깨달은 자는 空을 보리라. 空으로써 空을 보니 空이 空인 바가 없고 空인 바가 이미 없으니 無無가 또 無이고 無無가 이미 無하여 물이 깊게 항상 고요하여 고요함에 고요한 바가 없으니 욕구가 어찌 능히 나오겠는가? 욕구가 이미 나오지 않으면 즉 이것이 참된 고요함이다. 참된 고요함으로 물건을 응하면 항상 참된 성품을 얻을 것이니 항상 응하면서 항상 고요하여야 항상 맑고 고요하리라! 이와 같이 맑고 고요하면 점점 참된 道에 들게 되니 이미 참된 道에 들게 되면 得道라 이름 한다. 비록 得道라 이름 하지만 실질을 얻은 바가 없으니 衆生을 교화해야 得道라 이름 하니 능히 깨달은 자는 聖人의 道를 전할 수 있는데 노군이 말하기를 上士는 다툼이 없고 下士는 다툼을 좋아하며 上德은 德이 없거나 부족하고 下德은 德을 잡는다. 잡으며 붙는 자는 道德이라 이름 하지 않는다. 衆生이 참된 道를 얻지 못하는 까닭은 妄心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妄心이 있으면 곧 그 정신을 놀라게 하고 이미 그 정신을 놀라게 하면 곧 萬物에 붙으며 이미 萬物에 붙으면 곧 貪求가 나오고 이미 貪求가 나오면 곧 이것이 煩惱이고 煩惱妄想은 몸과 마음을 근심하고 괴롭히니 문득 흐리고 욕됨을 만나게 되면 태어남과 죽음을 유랑하며 괴로운 인간세계에 잠기어 오랫동안 참된 道를 잃으리라. 항상 참된 도는 깨달은 자 스스로 얻으니 도를 깨달은 자는 항상 맑고 고요하리라!
- 이상운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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